밤빛 [2022/05/30]
별하나 보이지 않는 밤이네
지상에는 아직도 불빛들이 어지럽지만
더 넓은 하늘은 불빛 하나 없는 적막
이 밤이 조금 더 시끄러웠으면 좋겠어
별빛과 함께 꿈꿨던 감성은
달빛이 비췄던 외로움은
벌레 취급 받으며 관속으로 사라지는 지상
언젠가 우화해 하늘로 날아가
낭만을 되살리는 반딧불이 되길
이 밤을 다시 밝힐 별빛이 되길
6월 초하루 [2022/06/01]
요즘엔 달이 안보여.
밤 산책때 마다 눈으로 쫓던 달인데,
하늘에는 희미하게 낀 구름뿐
달을 볼때 마다 생각났던 너가
달이 없으니 잊혀져 가지만
금세 찾아올 보름에
새하얗게 달이 뜨면
다시금 너의기억 살아나겠지
지난 번 기억의 밤은 쌀쌀했지만
다음번 밤은 조금 더 훈훈하기를
길 [2022-07-12]
홀로가는 이 길에도
스쳐가는 이 많았다.
한명한명 붙잡아
이 길은 어떠냐고,
제법 아름답다고
물어물어도
같이 가주는 이 하나 없었다
기대를 주면 실망을 받는다
다시 또 실망이 무서워
이제는 애써 모른척 하려해도
한심한 마음은 다시 흔들린다.
언제쯤 이 태풍은 가라앉을까
강철과도 같은 마음을 가지고 싶지만,
이 마음은 너무도 연약해
밤바람에도 쉬이 흔들려버린다.
수 많은 이들 스쳐가는 이 길을
나는 언제나 혼자서 걷는다.
죽은 쥐 (2022-08-24)
무심한 발걸음을 이끌며
차가운 돌바닥을 거니는데
흠칫, 작은 쥐가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매끈하고 깨끗한 서울의 아래에서도
아직 너 같은 지저분한 애들이 있구나
그러고 지나가려는데
쥐가 흘린 피웅덩이를 본 나는
그 속에서 진한 생명의 흔적을 느꼈다.
너는 어떤 삶의 끝에서야
그렇게 맥없이 죽어있느냐
그렇게 잔인한 진홍을 흘리느냐
나는 왜 더러운 쥐를 보고
가슴에 울컥함을 느낄까.
돌아다본 내 가슴에
이제는 허무함이 깃들어 있는데
작은 쥐의 피 웅덩이에서
나는 진한 삶의 흔적을 보았다.
이 마음이 부끄러워
나는 속죄의 심정을 흘렸다.
여름의 끝 [2022-08-30]
하늘이 여름의 끝을 비로 장식했다.
더위의 끝에 고대하던 선선함이 느껴지는데
알 수 없는 회한이 다가오는 것은
여름내 몸을 던지며 내달렸음에도
고작 이까지 밖에 오지 못한 까닭일까
아직 갈길이 멀어
짜증나는 여름을 붙잡고 싶지만
이제 기다리는 것은
마음에 태풍을 내리쬐는 가을밤
여름 태양 아래서도 마음이 따뜻하진 않았다
봄이던 여름이던 가을이던 겨울이던
아직 고지를 넘지 못한 미생에게는
고개를 들 자격 없는 계절들
더 멀리 날고 싶어서
길게 도움닫기를 뛴다지만
실은 바라는 것은
날개가 꺽여 추락하는 새
밑바닥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새의 표정이
후련한 까닭은 무엇인가
희망보다 편안한 절망과
꿈보다 아늑한 체념
여름의 마지막날에 비가 내린다.
희망의 족쇄를 벗고 싶은 나는
절망을 기대하며 여름에 이별을 고한다.
고목 [2022-10-15]
지나온 시간은
놓쳐버린 사랑에 대한 회한
말라버린 나무도막을
태양같은 웃음이 감쌀때
까스릴듯이 아팠지만
그럼에도 따스했다
사랑을 겪지도 못하고 커버린 고목은
햇살을 견디기에 너무나도 연약해
다른 이를 향해 내리쬐는 태양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성장의 시간은
아픔을 겪어내는 시간
겪어본 아픔이 아니라서
견딜 수 있는 아픔이 아니어서
부슬비처럼 내려온 성장의 시간을
하염없이 슬퍼했다
덜 자란 고목인 나는
단비처럼 내려온 고통에
있는 그대로 사무쳐버렸다
새로운 심장 [2022-12-22]
이 마음엔 새로운 이가 필요하다.
낡아 헤진 심장을 대신해줄
새로운 이가,
미련에 붙잡힌 누더기 심장은
불안하고 애처로이 뛰는데
가슴에 박힌 바늘에 닿을때마다
들숨과 날숨이 한없이 시리다.
표류하는 마음이 향해야할 지표가
달빛과도 같이 선명했다면,
그러니까 그런 연유로,
이 마음에는 새로운 심장이 필요하다.
찬바람 [2022-12-29]
열차서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서울의 싸늘한 추위
간 밤에 있었던
곪아있던 응어리는
저편에 남겨두고 왔다.
나는 추위에 약한데도
싸늘한 찬바람에
되려 위안을 느끼는 이유는
앞으로는
마음을 조금 굳혀야지
그만 흔들려야지
추위에도 좀 더 강해져야지
하고, 마음 먹은 까닭일 것이다.
울컥하는 응어리를 애써 삼키며
소년은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
생일선물 [2023-01-01]
생일엔 혼자 지내는게 습관이다
그 많던 친밀한 이들 중
일년 중 내 가장 소중한 날을 내어주고 싶은 이가 없어서 일까
이기적인 삿된 마음
사람을 바라지만 사람을 싫어하는 마음
이 삶을 고독하게 만드는 건
아무곳에도 의지하지 않는
나의 이기심이다
특별한 날에
아파서 약을 타먹고
뭐하나 먹지 못하고 굶고
아무 이도 보지 않고 홀로 지내면서도
되려 만족스러운 것은
스스로의 인생을 자조하고
자기 동정하고 싶어하는
한심하고 나약한 나의 나체이다
나의 문제를 알지만
스스로 고칠 마음이 없다는 것은,
새로운 누군가가 다가와
나의 삶을 바꿔줬으면 하는
의지 없이 애정결핍에 빠진
나의 어린 마음이다.
한 겨울 밤의 꿈 [2023-02-10]
뜬 눈으로 지새운 밤
마음을 천진하게 만든 꿈은
새벽과 함께 깨며 아픔만을 남긴다.
시간이 흘러
몸은 계속 늙어가는 데도
마음은 아직도 자라지 못해
여전히 희망이 아프다.
꿈을 꿀 수 있던 최후의 기회는 사라지고
잔인한 아침이 현실을 보게 하는데
그래도 쓰러진 마음이 빨리 일어나는 것을 보아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사람의 마음은 키우는 것이 아니라 깍아내는 것
현실과 이별과 배신과 아픔으로
마음을 자해하며 견딜 수 있는 희망만 남기니
남은 것은 무딘 감정과 슬픈 평온함
한 겨울밤의 꿈을 깨며 마주한것은
적막하고 싸늘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아늑한
마음의 설원이었다.
마침표 [2023-02-10]
20대의 삶은 인생을 살면서
아픔을 배워가는 인생의 1막
홀로 서는 법을 배워야 하는 어린아이들에게
세상은 자비롭지 않았다
지난 삶을 되돌아보니
이 이야기는 썩 나쁘지 않은 청춘의 기록,
밤빛 별처럼 차갑고 쓸쓸하지만
아련하게 빛나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작고 소중한 아픔들
나의 청춘은 외로움과 아픔과 고뇌와 타협이었다
앞으로의 삶에도 아픔이 가득하겠지만
2막에서는 다른 시상을 가져가야 하니
우선은 여기서 청춘에 마침표를 찍어서
인생의 1막과 고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