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중의 블루

나약한 나는 어쩔수 없는걸까.
오랜 평온에 드디어 무심함을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사과가 익어서 나무에서 떨어지듯
마음도 중력처럼 바닥으로 떨어진다.

어둠새 다가온 나의 별들은
마음을 찌르며 괴롭게 만들더니
잠시 한눈 판 사이에
다시금 아스무레 사라지고 말더라.

매일 뜨는 달처럼 찾아오는 우울과
간혹 있는 맑은 날처럼 찾아오는 희락
인생을 하나의 기분으로만 살기엔
정말 더럽게도 길구나.

점점 더 길어지는 어두운 밤은
기어코 한밤이 저녁이 되고 새벽이 한밤이 되니
하강의 시간은 상승의 시간을 잡아먹었다.

그럼에도 잠을 강요하는 밤에 못이겨
오늘도 내일 있을 마음의 굽이길을 두려워 하며
얇은 눈꺼풀을 억지로 닫을련다.


순애

내가 널 미워할 수 있었더라면
이 정도로 아프진 않았을 텐데.

사랑은 왜
쓸데없이 순수한 감정이라서
그러면서도 지우기 힘든 감정이라서
마음은 왜
복잡해지지 않고 단순해 져버려서

너의 말, 너의 마음, 너의 행동, 너의 미래가
하나하나 기쁘고
하나하나 아프게 다가올까

이루지 못할 사랑이라
모든 것을 포기했는데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사랑이었구나.

머나먼 시간이 흐른 뒤에는
너를 소중한 별로서 기억할 수 있기를
이 아픈 추억들을 사랑할 수 있기를


허기

인생이 내게 다가와
먹는 것, 입는 것, 보는 것, 하는 것이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으니
위장의 허기가 가셨다.

그런데도 가슴에 쌓인 시림은 무엇일까
온몸을 채우는 공허함은 무엇일까

삶이 흐린 날처럼 변했는데
시간을 인내해도
태양도 뜨지 않고 달도 뜨지 않는다.

채워 넣을 욕망이 없으니
평생에 들러붙은 뜻 모를 허기

지상의 욕구가 사라진 위장에
평생을 자리 잡은 것은
채워질 기약 없는 외로움이었다.


행운

95점.
나의 오늘 운세 점수

마침 듣고 싶은 희소식이 많은 지라
혹시나 희망을 가져보지만
기대가 배신되는 날이 많은지라
이도저도 못하고 마음만 졸였다.

순간순간을
포기한 희망을 기대하며
실망할 행운을 기다리는데

어느덧 밤이 되니
역시나 듣고 싶은 소식은 없었고
돌아온 것은
쓰잘데기 없는 사소한 행운과
긴장에 가득 차 느끼지도 못했던 허기였다.

바라는 행운을 줬으면 하는데
하늘은 코웃음 치며
의미도 없는 행운을 준다.

이로 돌아보면
하늘이 멍청하던지
내가 욕심이 많던지
둘 중 하나인 듯 싶다.


서울의 마지막 밤

서울의 마지막 밤,
질척거리고 싶지 않아 무심하게 떠나려고 했지만,

너무나도 까만, 8년동안 똑같았던 밤이,
지난 이십대를 꺼내오며 감성에 빠뜨린다.

돌이켜보면 스물하나부터 스물아홉까지,
나는 항상 이 어두움에 몸을 늬었다.

첫 2년은 힘든 시기였다.
십대에 돋아난 수많은 가시들은
청춘의 또래에게는 없는 것이더라.
그래서 나는 밤중에 몸을 웅크리며
홀로 울며 가시를 하나하나 뽑아냈다.

그 다음 2년은 힘든 시기였다.
국가의 부름에 자리잡은 곳은,
늘그막의 마지막을 보내는 곳.
약한 이들의 아웅다웅 속에서 버티기 위해
나는 생각을 지우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그 다음 2년은 힘든 시기였다.
무수히 많은 가능성이 있었지만
무수히 많은 불확실성이 있는.
모두가 어디론가 걷고 있기에
나도 어딘가로 급하게 달려나갔다.

그 다음 2년은 힘든 시기였다.
급하게 달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제는 지나온 길을 돌아갈 수 없었다.
인생에 휩쓸려 버린 탓일까
나는 삶을 알아가고자 펜을 들었다.

어른이 되기를 종용받는 홀로 남겨진 아이에게
사회의 하늘은 너무 거대해서 무서웠다.

돌이켜보면 인생은 나의 20대에게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너는 대체 왜 살아가냐
너는 이제 무엇을 할거냐
고통을 매개해 답을 내기를 강요했다.

나는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서울의 밤하늘을 거닐었고
상념에 못이겨 시를 토해냈다.

그 속에 어렴풋이 찾아낸 답을 가지고
이제는 인생 3막을 향해 이 밤을 떠난다.

나에게 서울은,
20대이자 청춘이자 아픔이었다.

언젠가 다시 돌아오때는
짓눌릴 듯한 까만 어둠을 딛고,
서울의 밤을 내 것으로 만들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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